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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일기와 칼럼 사이)

흐드러지다, 봄이 떠오르는 형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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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봄은 시작과 연결된다. 매년 같은 삶의 반복이었지만, 왠지 봄이면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했다. 봄은 그렇게 내게 언제나 환상을 심어준다. 자주 속지만, 나는 봄을 좋아한다. 이제 봄이 왔나 싶으면 벌써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훌쩍 떠나버리는 봄. 나는 그런 봄이 좋다. 그리고 그런 봄을 떠오르게 하는 말이 있다. 

"흐드러지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오래 살았던, 내가 좋아했던 동네의 하천에는 봄이되면 벚꽃이 많이 피었을 뿐이다. 단순히 많은 것을 넘어서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게 흐드러지는 것은 벚꽃이고, 벚꽃은 곧 봄이었다. 점점 머무르는 기간이 짧아져서 가끔은 환상처럼 느껴지는 그런 봄에게, 그리고 벚꽃에게 '흐드러지다'만큼 훌륭한 수식어가 없다고 생각한다.

흐드러지다는 말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현실이기도 하다. 눈앞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광경을 우리는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볼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혹은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봄과 너무도 잘맞아떨어진다. 

곧 겨울이 온다. 그래서일까, 나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봄을 생각한다. 봄의 흐드러짐을 생각한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그 날을 떠올리며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야겠다. "매우 탐스럽거나 한창 성하다"는 뜻을 담은 흐드러지다는 형용사가 유독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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