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인 의미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영화에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길복순을 보다가 와이프가 나에게 서운해하기도 했다. 영화에 서운함을 느낀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딱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다. 이 포스팅에서는 영화의 서운함보다 내게 있었던 서운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금요일밤이었다. 얼마 전 유퀴즈에서 전도연 님이 나왔다. 유퀴즈의 메인 MC인 유재석과 대학 동기이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하는 '길복순'의 홍보차 나왔다. 전도연은 매우 긴 분량을 받았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과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길복순이라는 영화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3/31(금) 넷플릭스 길복순 공개일 밤에 함께 영화를 봤다. 조금 더 재밌게 보기 위해서 집에서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는 팝콘과 과자도 사 왔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부에 설경구가 대사를 한다. "살인 한 번이면 참을 인 세 번을 면한다"라는 대사였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라는 속담을 활용한 유머다. 와이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돌려봤다. 다시 돌려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이해를 못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와이프는 화가 났다. 무시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을 때 갸우뚱거리곤 한다. 말로 '이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다. 와이프에 대해서, 와이프가 하는 말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주 그렇게 표현한다. 와이프가 내가 갸우뚱 거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나는 말로 길게 설명하며 갈등이 생기는 것보다 그 정도 제스처와 함께 넘기는 편을 선호한다. 그로 인해 화가 났다. 나는 아직 정확히 화가 난 경로를 알지 못한다.
- 가능성 1) 저런 유머를 왜 영화에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의 의미는 이것이다. 나는 적절한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와이프가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랑 생각이 달라서 나는 갸우뚱했다.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표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왜 감정이 상했는지 잘 모르겠다.
- 가능성 2)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라는 말을 모르고 있었다 : 만약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화가 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는 상황이라면 나의 갸우뚱 이 "이 정도도 몰라?"라는 무시의 뜻으로 비쳤을 수 있다.
정확히 파고들어서 이유를 물어보고 대화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편을 택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분 나빠할 주제이니 그저 흘러가게 두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사과하고 말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별로 사과를 받을 뜻이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굳이 해명하고 억지로 화를 풀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화를 풀어도 곧 싸울 일이 생길 것이다. 아쉬운 부분은 매 번 와이프만 먼저 기분 상해하고, 그 기분을 나에게 표출하는 일이 생긴다. 내가 먼저 그런 적도 있었을까? 있었겠지? 그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좋겠다. 그래야 공정해지는 거니까. 그렇지만, 내가 먼저 짜증을 표출한 기억은 잘나지 않다. 나라고 좋은 일만 있었겠느냐만은, 나는 짜증 나는 일이 발생해도 할 수 있는 한 좋게 말했던 것 같다.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았다.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같이 살면 당연히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참지 않고 자기 기분을 다 표출하면 그걸 받아내는 상대방은 지치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 보니, 내가 나서서 기분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내가 감정에 공감하고, 기분을 풀어주는데 재능이 없기에 내가 노력한다고 풀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나에게 표출할지도 모른다. 어디가 아프다고, 어디가 안 좋다고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상황까지 고려해서 노력할 여력이 나에겐 없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한다. 요즘 머리가 자주 아프다. 그냥 두어야지, 풀어지면 풀어지는 거고, 풀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서로가 조금씩 견뎌야 한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갔다가 다른 동료의 차를 함께 타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 전 와이프와 했던 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에게 "오빠는 뭘 할 때 제일 좋아?"라고 물었다. 내가 뭔가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게임 정도 말고는 잘 모르겠다. 나는 뭔가 좋아하는 게 없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다. 회사 동료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한다. 이대로 지속되는 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없다. 무언가를 좋아할 여유가 없다. 여유는 진짜 없을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왜 여유가 없을까, 나는 왜 재밌는 게 없을까. 이게 진짜 문제일까. 잘 모르겠는 문제들 투성이다.
아무튼 길복순을 보다가 와이프가 서운해했다. 영화가 그다지 재미없어서, 레인지에 돌린 팝콘이 타버린 것도 조금은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영화는 기대가 커서 재미없게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전도연의 출연작이 너무 대작들이었다. 그런 대작들과 비교해 기대했기 때문에 서운함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액션씬에서의 카메라 연출이라던가 사람을 죽이는 일과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함께 해내는 길복순의 모순적인 입장 등 어느 정도 포인트들은 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추천할 정도는 아니다. 전도연을 좋아하시거나 웹툰 원작을 재밌게 보셨던 분들은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이야기 (일기와 칼럼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묻지마 살인, 대한민국 법은 너무 약하다 (2) | 2023.08.06 |
---|---|
답답한 마음을 다스려보자 (0) | 2023.04.30 |
흐드러지다, 봄이 떠오르는 형용사 (0) | 2021.11.16 |
어떻게 살 것인가,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 (1) | 2021.05.09 |
'히키코모리'에 관하여 (나는 괜찮을까) (0) | 2021.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