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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일기와 칼럼 사이)

나는 자연인이다 (Feat. 코스피3000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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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3~5%를 자랑하는 MBN의 인기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제목으로 정했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요즘에 느끼는 감정들을 기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타고 올라가다보니,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왜 사회를 뒤로하고 자연으로 흘러들어가는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써보고자 한다.

나의 20대는 치열했다. 치열했던만큼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쉽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그 안에서 목표한 것들을 이뤄냈다. 그 목표를 이뤄나가는 재미를 느끼며 살았다. 쉼없이 그렇게 앞으로만 달렸다. 그런데 치열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무조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달려야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나는 개인주의성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내가 불편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내가 희생정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타인과의 교류를 최소화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어떻게 대인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하고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내 본성과 이성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의 이성은 어떻게 대인관계를 맺어야하는지 알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나름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갔다. 근데 내 본성은 이성과 다르기 때문에 내가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대인관계는 내게 피로감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이런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서 나는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20대를 열심히 살았던 것은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였다. 나는 돈에 의해 움직였고, 얼만큼의 돈이 필요한지에 대한 목적없이 지금 당장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지금 고생해서 나중에 돈걱정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돈걱정을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까지 돈을 벌어야하고, 얼마나 돈이 있어야 내가 만족할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 경제적 목표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서울/경기도권에 아파트를 갖고 싶다. 안정적인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 물론 사람의 욕심이 끝도 없어서 만약 내가 목표를 이루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집이 생기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지금의 나는 불안하다. 내 또래들이 이룬 것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나와 비교한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들을 이미 이룬 친구들이 많다. 그들을 보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일단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고 투자로 돈을 벌 수도 있다. 나는 투자를 공격적으로 한다. 거의 도박처럼한다. 과거에 그래서 많이 돈을 잃었다. 그 결과로 나는 다시는 투자를 하지 않고 묵묵히 돈을 모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차분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투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친한 친구의 "현대차가 날라간다"라는 카톡에 코스피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투자에 관심없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긴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로 인해 찾아본 현대차 주가는 24만원을 넘어가고 있었고, 코스피는 3000을 돌파했다. 충격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 (묵묵히 월급을 받아서 돈을 모은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많은 돈을 잃었기 때문에 나만의 신념을 세웠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념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살아가면 천천히 가더라도 앞으로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스피 3000, 비트코인 4000만원, 집값 10억의 시대에서 지금처럼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식과 비트코인 등 재테크와 도박 사이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끈 이유는 행복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단순한 사람이 살아남기에 너무도 복잡해졌다. 묵묵히 살고 있으면 그렇게 뒤쳐지는 세상이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계속 주변을 살피고 노력해야한다. 문득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또 치열하게 살아갈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나는 그 속도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는 느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왜 거기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자연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는지,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공감을 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직 내 신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코스피 3000을 보고, 뒤로가는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정말 뒤로 갔느냐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 나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현재 집값이 유지되고 계속 아파트가 공급된다면 나도 40살 즈음에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만약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해서 아파트를 사는 가격이 아니라 분양가가 10억이 넘어가는 시대가 오고 코스피가 4000, 5000을 돌파한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내 신념을 무너트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세상의 속도를 아예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코스피와 비트코인, 부동산뿐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세상이고, 그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도 변한다. 사람이 변하면 상황이 바뀌고 상황 바뀌면 나도 달라져야 한다.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할지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신념은 무너지지 않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만큼 신념도 변해야할지 모른다. 일단은 내가 가진 신념을 유지하지면 평생 지금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신념마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빠르고 치열한 세상과 어느정도 보조를 맞추어 살아가보고자 한다. 걸음이 느린 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려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처럼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는 그렇게 생존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안정적인 시스템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멈추지말고, 세상과 조금 더 섞여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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