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퇴사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퇴사는 아니다. 주변 동료, 아니 1년 후배의 퇴사에 대한 이야기다. 후배가 퇴사를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의 퇴사였기 때문에 나에겐 조금 더 큰 울림이 있었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퇴사 이유 중에 가장 멋진 퇴사 이유는
"내 시간을 내가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서"
선배가 아닌, 1년 후배가 결정한 울림있는 퇴사 이유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3월 전후부터 재택근무를 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재택근무를 실시하였고, 이 재택근무는 우리 직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 여유는 결심으로 이어졌고, 재택근무가 끝나자마자 회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퇴사 러쉬를 경험해야 했다. 그동안 우리 회사는 그렇게 퇴사자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이러한 회사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꿨다.
퇴사의 이유는 대부분, 아니 모두가 이직이었다. 재택근무 기간동안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은 회사의 비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 회사가 비전이 있는가, 계속 다닐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 친구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아마 이런 의사 결정을 내린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퇴사한 친구들은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확정된 친구들만이었다. 우리 회사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서도 이직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퇴사하지 않고 아직 다니고 있다. 이들은 언제든 퇴사를 결심할 수 있는 잠재적 퇴사자들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퇴사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뭐 나쁜 현상은 아니다. 그만큼 새로운 곳에서 이직해오는 사람들도 많고, 이렇게 순환이 되어야 조직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
다시 내 후배의 퇴사 이야기를 해보자. 모두가 이직으로 인한 퇴사를 결정할 때, 내 후배는 유일하게 이직이 아닌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다. 친하게 지냈던 후배였기에 퇴사를 결정한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회사는 월급을 준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니 월급 외에 본인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퇴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월급'이란 우리같은 직장인들에게는 마약과도 같다. 상사가 싫고, 회사가 비전이 없고, 몸과 마음이 지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월급'이라는 마약을 끊을 수가 없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약 중독자들도 마약을 끊고 어느 정도 재활기간을 거치고나면 다시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월급중독자들인 우리 직장인들이 생각해봐야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대출이 있고, 가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직장인이라면 월급 중독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시에 많은 생각을 했다. 이직도 고민하고, 퇴사도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 남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나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월급이었을 것이다. 월급없는 매달 25일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으리라.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잘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퇴사를 결정할 마음은 없다. 퇴사할 이유도 없다. 지금 회사에서 보내고 있는 내 시간이 마냥 아까운 것도 아니다. 발전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겐 회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도 회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퇴사한 후배가 말한 것처럼 지금 내가 가진 시간은 소중하다. 그 시간이 가치없다고 느껴지고, 월급 중독에서 벗어날 자신이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퇴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직을 고민할 때, 다른 이유로 퇴사하는 후배가 멋있었다. 나는 비록 멋있는 퇴사를 할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멋에 대한 동경은 있다. 멋있다.
지금 그 후배는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운동을 한다. 그리고 공예를 배우고 있다. 둘다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배달앱을 통해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하는 것은 본연의 퇴사 이유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여유 시간만 2~3시간 정도를 하고 있다. 일단 1년 정도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으면서 여유를 갖고 지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퇴사 결정이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할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욱 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제3자다. 내가 그의 결정이 잘한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논할 수 없다. 나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논할 수 없다. 오로지 그만이 지금의 결정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판단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선택은 멋있고, 내게 어떠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을 했다. 회사에 남아서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선택이다. 퇴사한 후배에게는 퇴사의 이유가 있듯, 내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갈 곳이 없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아 있으려는 선택이다. 나는 내 후배를 응원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응원한다. 모두 잘되길 바란다.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도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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