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티빙 등 다양한 볼거리가 생겼다. 그러면서 그동안 꽤나 자주 읽었던 책을 소홀히 대했다. 그러다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다. 영화로 제작까지 된 소설의 저자이자 나영석 PD의 신개념 예능프로그램인 '알쓸신잡'에도 출연하며 적국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다. 계기가 있어서 접하긴 했으나 나는 사실 여행에 대해 그다지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그렇다. 굳이 이 책을 읽어서 여행에 대한 나의 관점이 변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서 여행에 대한 내 삶의 태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여행에 대해 큰 흥미가 없이 살아왔지만, 앞으로의 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적어도 이 책이 여행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맞다. 전혀 관심없던 카테고리였던 여행에 대해서 '나도 여행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방향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해보자. 책은 9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챕터가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는 듯 약한 연결고리로 이어져있다. 그렇지만 각 챕터만 따로 떼어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고 재밌다. 저자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우리는 공감을 하며,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저자의 생각에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했던 일이다. 흥미롭게 읽었던 3개의 챕터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해보자.
1. 상처를 모두 흡수하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이 챕터는 "나는 호텔이 좋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호텔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호텔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왜 호텔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공감가게 풀어낸 글을 나는 본적이 없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P.64)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의 냄새까지 지워야하니까 호텔에선 가정집보다 훨씬 독한 세제와 방향제를 쓴다.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맡게 되는 그 냄새, 분명 처음에는 자연의 어떤 향을 흉내냈겠지만, 어느 순간 그 근원을 몰각한 듯한, 아니 아예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한..." (P.65)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 왜 호캉스가 유행하는지에 대해서, 가장 안락해야 하는 공간인 집마저도 어떤 순간에는 안락한 휴식처가 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특히 저자처럼 집에서도 어느 정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 그런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호텔은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되어준다.
나는 평소 호캉스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챕터를 읽고 호캉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여행의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2.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저자가 tvN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겪었던 여행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했던 여행을 '가장 이상한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독자와 시청자인 내가 보기에 이 '가장 이상한 여행'은 '가장 매력적인 여행'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다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저자가 경험했던 이 여행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쉽게 말해 '같이가서 혼자 여행하고, 같이 나누는 여행'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매력적인 여행이라 생각하지만, 또 리스크가 상당한 여행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기회가 되면 좋은 사람들과 이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저자의 글을 통해 이 여행이 어떤 여행인지 살펴보자.
"가기는 함께 가지만 도시에 도착하면 흩어져 개별적인 여행을 한다. 저녁에는 식당에 모여 대화를 한다.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이 대화들은 가지를 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 우리는 밤늦게 혹은 다음날 아침에 서울로 돌아온다. 함께 떠났던 이들이 각자의 여행을 하고 저녁에 만나 대화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크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이 여행의 이상함은 출연자의 제작진, 시청자가 이 여행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있다" (P. 99)
어떤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꽤나 매력적인 여행이 될 것 같지 않은가?
3. 여행으로 돌아가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돌아올 곳'의 존재유무라고 생각한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방랑이나 모험이다. 그렇지만 떠나서 '돌아올 곳'이 정해져있다면 그것은 여행이다. 하지만 이 챕터의 제목은 "여행으로 돌아가다"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저자 김영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P.207)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여행에 대해 호감이 생긴다고 해도, 나는 체질상 저자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고, 저자는 저자대로의 삶이 있다. 여행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고, 각자가 여행의 이유가 다르다. 여행의 이유,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체적으로 타인에 의한 이유가 많았다. 다음 여행은 나로 인해 시작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내 여행의 의유를 알아보아야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챕터들이다. 기억에 남는 챕터 위주로 조금 더 깊게 이야기를 했을 뿐, 다른 챕터 역시 여행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여행을 좋아하거나,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한 분은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나처럼 여행에 대해 다시 소극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정답은 없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게 될 계기가 되어줄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다. 당신의 여행을 찾아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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