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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리뷰 (영화 등)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드 보통] 진짜 이야기가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관찰소설 (Feat.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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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온전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완벽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들은 지금보다 더욱 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마무리 문구는 다르겠지만, 이런저런 사건을 겪고 두 남녀 주인공은 행복에 이르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소설로는 훌륭한 결말일 수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 진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인 '알랭드 보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평범한 소설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자, 로맨틱하며 독자들이 관심있어 하는 이야기가 모두 끝난 이후의 시점. 지루하고 일상적인 사건들 뿐이기에 사람들이 그다지 흥미가 없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 어느 시간보다도 우리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겉표지를 벗겨낸 보랏빛 하드커버가 정갈하니 이쁘다, "THe course of love"를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으로 번역했는데 제법 괜찮다

이 책은 소설로 분류된다. 억지로 끼워맞추면 소설의 기본 구조인 '기승전결'의 구조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의 장르는 '관찰 소설'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관찰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주인공 남녀의 결혼 생활, 어쩌면 일반적인 부부(중산층 이상)의 결혼생활을 관찰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스토리는 별거 없다. 블로그에 내용을 스포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다.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결정한다. 결혼 후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두 아이를 나아서 키운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바람을 피우게 된다. 외도가 걸리지는 않지만 그 이후로 결혼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 그렇게 상담을 받고 서로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 둘은 다시 안정적인, 혹은 그렇게 보이는 결혼 생활로 돌아간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다른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짜 러브스토리에 대한 이야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외에 특별한 스토리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스토리를 통해 기쁨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우리 곁에서 흔히 일어나는 그런 일들을 관찰하면서 공감하고,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결혼생활을 예측할 수 없다. 단지 추측할 뿐이고, 이 책은 그 추측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지침서와 같다. 그리고 결혼을 한 사람들에겐 공감가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남녀 주인공은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일로 다툼을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일상과 같은 모습이다. 결혼생활에서는 더욱 자연스러운 일상이리라. 그러한 지루하고 재미없는, 그리고 굳이 다루고 싶지 않은 일상에 대해 적절하게 묘사하며 작가의 주관적인 의견을 첨언한다. 소설의 이야기 진행은 일반 글씨체로 진행하며, 작가의 주관이 담긴 이야기는 조금 작은 글씨로 굵게 표현한다. 나는 그런 작가의 주관이 담긴 내용이 좋았다.

저자는 결혼을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이라 설명한다. 조금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틀린 해석은 아닌 것 같다. 

이 부분도 와닿았다.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당산의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그 부분을 받아들이는 일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작일 것이다.

이 외에도 부부 사이에서 "토라짐"이라는 감정에 대한 에피소드도 인상깊었다.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소통하지 않으려는 강렬한 욕구,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라는 문장으로 토라짐의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데 너무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결혼을 하면 더욱 흔하게 느낄 그런 감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소설의 마무리 단계에서 남자주인공인 '라비'는 본인이 이제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이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라 서술한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이를 완벽히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다르다. '라비'는 결혼생활을 10년 정도 하고, 한 번의 외되를 겪는 등 다양한 사건을 겪고나서야 결혼에 대해서 이해를 했다. 모두가 같은 과정을 겪어야 결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결혼이라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라비'와 '커스틴' 부부가 "평균적인" 우리나라의 부부들보다 다소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통해서도 왜 '알랭드 보통'이라는 작가가 한국에서 사랑을 받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기혼자에게도, 미혼자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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