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운전을 하지 못한다. 면허는 있다. 그렇지만 운전을 안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연수를 받았다. 당장 차를 사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단 운전은 할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사는건 그 다음 문제였다. 물론 연수를 받아서 어느 정도 운전을 할줄 알게 된 다음에 운전을 계속 하지 않으면 말짱 도로묵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시작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시작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단 운전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먼저 비용은 10시간에 25만원이다. 강사마다, 업체마다 비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10시간에 22~30만원 내외인 것 같다. 나는 보험이나 사고가 났을 때의 보증 등으로 인해 업체를 통해서 했다. 그런데 단점은 강사를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강사도 있고, 강사의 성별이나 나이대 등에 대한 선호가 있을텐데 그러한 부분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런데 중간에 업체에 요청하면 강사를 바꿀 수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첫 수업 이후에 강사료 25만원을 모두 입금해야 한다고 해서 강사가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바꿀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10시간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강사와 진행했는데, 결론적으로 그냥 그랬다. 그래도 스스로 어느 정도는 운전하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 정도는 얻었기에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주차 제외)
조금 뜬금없지만, 운전 연수가 끝나고 나니까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하는 내 모습이 지금 내 삶이 처해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로 위에 수많은 차가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는걸 나는 아직도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운전 연수를 마쳤으나 아직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간단히 하자. 우리 집에는 아직 한 번도 자동차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차가 없으셨고, 면허도 취득하신 적이 없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자동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래서 굳이 자동차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다. 자동차가 어느새 필수품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남자 나이 30대 중반인데 아직 운전을 못한다고 하면 조금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약간은 피해의식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운전연수를 받았지만, 여전히 운전은 내게 있어서 달가운 일이 아니다. 재밌다는 사람도 있는데, 내겐 그렇지 않다. 사실 차도 갖고 싶지 않다. 누가 공짜로 차를 준다고 해도, 굳이 끌고 싶지 않을 정도다. 가지고만 있어도 쓸데 없이 돈을 잡아먹는 것이 자동차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앞으로 사야하지 않을까 막연이 생각은 하고 있다. 아마 자동차를 옆에두고 살아오지 않은 탓이리라, 자동차가 주는 편안함과 이점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자동차가 없으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사실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냥 조금 불편하거나 택시를타고 그 때에 조금 많은 비용을 내면 된다. 아니면 어차피 나를 제외하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차를 가지고 있으니, 그들과 함께하면 된다.
내가 유일하게 차가 있어서, 아니 운전을 할 줄 알아서 좋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제주도에 갔을 때다.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고 같이갔던 친구가 운전했다.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제주도에서만큼은 자동차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제주도에서 자동차가 있느냐 없느냐는 삶의 질이 달라진다. 사실 서울에서는 잘 모르겠다.
굳이 포스팅 제목을 '운전과 인생'으로 정한 이유는 내 운전하는 모습이 지금 내 삶과 닮아 있어서 그렇다. 나는 운전할 때 엑셀을 누르는 것도 겁이나고,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겁이 난다. 급발진도 두렵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도 두렵다. 내 인생도 그렇게 빠르게 무언가 일이 진척되어 나가는 것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반대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지금 꼭 멈춰야 하는 상황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사실 자동차 사고가 크게 나면 잘못된 브레이크 사용으로 나는 경우가 많다. 급정거는 몇 중 추돌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도로의 흐름에 맞춰 브레이크를 밟는 것인지 두렵다. 그리고 인생도 빠르게 가는 것만큼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방학이나 휴식 등이 주어졌을 때, 마음 편하게 잠시 멈춰서 쉬는 것을 나는 잘하지 못한다. 부드럽게 멈춰서 가볍게 출발해야 좋은 드라이버가 된다. 나는 두렵게 멈춰서, 무겁게 출발한다. 지금 내 삶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든다.
그런데 사실 며칠 동안 연수를 받으면서 그나마 엑셀과 브레이크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정말 잘 못하는 것은 차선의 중심을 유지하고 가는 것과 주차다. 나는 줏대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기준점은 사실 자주 흔들리는 것 같다. 운전도 이와 닮아서 유연하게 핸들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차선의 중앙에서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나마 중앙에 대한 감도 조금씩 잡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아직 익숙치 않다.
정말 큰 문제는 주차다. 달리는 차는 언젠가 멈춰야하고, 주차장에서 쉬었다가 가야한다. 필요할 때 다시 달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주차를 못한다. 과속한 적은 없지만, 멈춰보지 못한 인생이기에 언제 어떻게 서야할지 모르는 것이 내 삶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를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조금 한심함을 느꼈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샤워를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주차도 못하는 한심함이라니. 내 인생도 제대로 주차 하지 못하면서 인생을 멈춘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럭저럭 운전 연수는 끝났다. 운전을 더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시작했으니 조금씩 익숙해져야 한다. 여유가 될 때 친구에게 조금씩 연수를 부탁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그리고 불안정한 내 인생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모두 코로나도 조심하고, 운전도 조심해서 하자. 그리고 초보 운전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면 좋겠다는 소망도 살짝 담아본다.
'오늘의 이야기 (일기와 칼럼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함에 관하여 (0) | 2020.04.16 |
---|---|
평일 아침의 관찰 (Feat. 재택근무) (0) | 2020.04.03 |
텔레그램 n번방사건, 유포자와 가입자 처벌수위는? (0) | 2020.03.23 |
[네이버 댓글 폐지] 좋은 결정, 보완할 점은? (0) | 2020.03.08 |
[간만에 등산] 미세먼지 맑음의 일요일 (#북한산 #사람많음 #파란하늘 #산에서는 노마스크) (2) | 2020.02.23 |